경희대학교 경영대학
> Home > 교수 > 교수칼럼/동정
 
작성일 : 11-03-15 13:05
[비즈칼럼] 은행 경영에 국적이 필요한 까닭 - 권영준 교수
 글쓴이 : 행정실
조회 : 1,074  

은행 경영에 국적이 필요한 까닭

 대법원이 론스타코리아 대표의 외환카드 주가 조작 사건에 대해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을 했다. 외환은행 노조는 때맞춰 론스타의 대주주 자격 박탈과 매각 중단을 외치고 있다. 16일 매각 승인을 내주려던 금융위는 고민에 빠져있다고 한다. 외환은행 매각이 또다시 소용돌이치는 것은 아닌지 시장과 국내외 투자자들은 촉각을 세우고 있다.

 어쩌다가 그 좋던 외환은행이 이리저리 팔리는 팔자가 됐는지 안타깝기 그지없다. 필자가 대학을 졸업하던 1970년대엔 국내 최고 직장 중 하나가 외환은행이었다. 국책은행의 안정성과 권위는 물론이고 당시로선 드물던 해외 근무도 할 수 있는 직장이었다. 외환은행은 우수한 인재가 몰려든 국내 최고의 엘리트 집합체였다. 89년 특수은행의 지위를 내려놓고 민간은행이 된 지 15년이 채 못 되어 외환카드 부실사태로 인해 지배구조도 불투명한 외국계 사모펀드인 론스타에 팔리는 기구한 운명이 되고 만다.

 흡사 소설 속 팔자 기구한 예쁜 색시의 운명을 보는 것 같다. 사랑했던 첫 남편은 부도를 내고 도망가고 무기력한 어미(감독당국)는 신분도 불확실한 외국인이 나타나자마자 딸을 헐값에 맡긴다. 어미는 자기 딸과 혼인할 자격이 있는 자인지(대주주 적격성 심사) 제대로 확인도 하지 않고 딸에게 ‘대안이 없으니 같이 살라’고 은근히 강요했다. 그러나 외국인은 애초부터 여자와 백년해로할 생각이 없었다. 잠시 잘 먹이면서 추스르다가 이전 같은 미모가 회복되면 다시 비싼 값에 내다 팔 심산이었다. 지금 그때가 된 것이다.

이제 중요한 것은 여자의 마음이다. 자신을 진정 사랑하고 평생 서로 헌신하며 해로할 남자가 누구인지를 가려내야 한다. 어미에게 다시 속아서도 안 되고, 외모만 보고 아무 남자와 재혼해서도 안 된다. 역사의 시곗바늘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2003년으로 돌아가고 싶다. 한은이 외환은행을 위해 추가로 증자를 해주든지, 공적자금 5000억원만 더 투입했더라면 오늘날의 외환은행 사태는 막을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와서 후회하면 어쩌겠는가. 이번 기회에 지난 10년 가까운 세월의 묵은 숙제를 해결하기 위한 결단을 내려야 할 것이다. 미해결 상태로 놔두면 론스타가 챙겨갈 이익만 커진다. 법리적 해석과 함께 매각을 기정사실로 받아들였던 시장의 신뢰, 민법상 계약 준수 의무, 대외신인도 등도 고려해야 한다. 비록 론스타와 같은 불투명한 자본가에 양도차액을 안겨주는 아쉬움과 상처가 남지만 경제의 핏줄인 은행 경영 주권을 지키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외환은행 노조는 독자생존을 위해서라면 외국계 은행도 기꺼이 좋다는 생각을 하는 것 같다. 그러나 수익 극대화만을 목표로 삼는 외국계 은행이 외환은행을 인수하게 되면 중소기업 지원 등의 금융정책상의 원활한 협조가 어려워짐은 물론, 그동안 외환은행이 축적해 온 해외 영업망이 불필요해지거나 인수 은행 지점들과 중첩돼 핵심 기업가치가 상실될 우려도 존재한다. 아무리 자본에는 국적이 없다고 하지만 은행 경영에 국적은 분명히 필요하다. 외환은행은 물론 국가경제 전체가 이미 엄청나게 비싼 대가를 치렀다. 국익을 위해 감독당국은 물론 외환은행 임직원들과 매수 주체가 힘을 합쳐 좋은 결과를 이루기를 간절히 바란다.

                                                                                          중앙일보. 2011. 3. 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