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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 2일(화) 오전 10시 30분, 경희대학교 오비스홀 423호에서 ‘2025 경영대학 & 경영연구원 외부 전문가 특강(8)’이 열렸다. 이날 특강은 딜로이트 안진회계법인 One ESG의 허규만 파트너가 「대한민국의 지속가능성 공시 의무화 시대, 그 내용과 당면 과제 및 시사점」을 주제로 진행했으며, ESG·회계·규제 환경에 관심을 가진 학생과 교수들이 참석했다. 허 파트너는 “오늘 이야기는 환경운동이 아니라 투자자를 위한 재무정보에 관한 것”임을 분명히 하며 강연을 시작했다.
그는 먼저 인플레이션과 구조적 변화를 설명하며 앞으로의 세대가 직면할 압력을 세 가지 키워드로 정리했다. 인구구조 변화(Demographics)로 노동 인구가 줄어들고, 탈세계화(Deglobalization) 속에서 미국과 유럽이 무역 장벽을 강화하며, 탈탄소화(Decarbonization) 과정에서 화석연료를 줄이는 대신 더 높은 비용으로 에너지를 조달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흐름 속에서 유럽연합의 탄소국경조정제도(CBAM)는 “규제가 곧 보이지 않는 무역장벽으로 작동하는 시대”를 보여주는 대표 사례로 소개됐다. 유럽 내 국내 배터리·자동차 공장 역시 이런 규제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다.
이어 허 파트너는 유럽 ESRS 공시 기준과 국제지속가능성기준위원회(ISSB) 공시 기준의 목적 차이를 짚었다. 유럽 기준이 투자자뿐 아니라 종업원, 소비자, 지역 주민 등 다수의 이해관계자를 위한 정보를 요구하는 이중중대성(double materiality)에 기반한다면, ISSB 기준과 이를 따르는 한국 기준은 “오직 투자자의 의사결정에 필요한 정보”에 초점을 둔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나라 ESG 공시 의무화 논의가 기후위기 대응이 아니라 ‘성장을 북돋는 금융혁신’과 ‘생산적 금융’ 과제 안에 배치돼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ESG 공시가 “환경 담론의 연장이 아니라 자본시장 규칙을 정교하게 만드는 작업”이라고 강조했다.
허 파트너는 지속가능성 정보가 더 이상 ‘비재무정보’가 아니라는 점도 분명히 했다. 탄소중립 설비투자나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사업전략은 결국 재무상태표·손익계산서·현금흐름표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그는 내연기관 엔진 부품만 생산해 온 상장회사를 예로 들며, 전기차 전환이 가속되면 업종 전환에 실패한 기업은 계속기업 가정 자체가 위협받을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한 “지속가능성 보고서에서 3년 안에 고탄소 설비를 모두 친환경 설비로 교체하겠다고 밝히면서 재무제표에는 해당 설비의 잔존내용연수를 10년으로 두는 것은 모순”이라며, 이런 경우 한쪽은 그린워싱, 다른 한쪽은 분식회계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앞으로는 지속가능성 공시와 재무제표를 연결된 정보로 보고, 동일한 가정과 데이터에 기반해 작성하는 것이 기업과 회계전문가의 핵심 과제가 된다는 설명이다.
기후 관련 공시에서 그는 기업이 공시해야 할 위험을 물리적 위험과 전환 위험으로 구분했다. 홍수·산불·해수면 상승과 같은 기후 변화 자체의 피해가 물리적 위험이고, 내연기관차 규제, 탄소세·배출권 제도, 소비자 선호 변화 등 규제·시장 요인이 전환 위험이다. 허 파트너는 “규제가 없으면 물리적 위험은 커지지만 전환 위험은 작고, 규제가 강해지면 물리적 위험은 줄어들지만 전환 위험이 커지는 트레이드오프 관계”라고 정리했다.
그는 ISSB 기준이 요구하는 네 가지 공시 요소—지배구조, 전략, 위험관리, 지표 및 목표—를 소개하며, 특히 전략과 지표·목표 영역에서 회계적 판단이 크게 개입된다고 설명했다. 기업은 단기·중기·장기(장기는 최대 30년까지)에 걸쳐 기후 리스크와 대응 전략이 재무제표에 미치는 영향을 정량적으로 제시해야 하며, RCP 8.5·2.6 등 다양한 기후 시나리오에 따른 재무적 결과를 비교·공시해야 한다.
온실가스 배출 공시는 Scope 1·2·3 배출량을 중심으로 다뤄졌다. Scope 1은 공장 굴뚝 등에서 직접 배출되는 온실가스, Scope 2는 전기·열 사용에 따른 간접 배출, Scope 3는 협력업체, 임직원 출퇴근·출장, 사용단계, 금융기관의 대출·투자에서 발생하는 금융배출량까지 포함하는 개념이다. 허 파트너는 “Scope 1·2 공시는 거의 합의된 영역이지만, Scope 3는 측정 범위와 책임 소재를 둘러싼 논쟁이 크다”고 말했다. 직접 생산시설이 없는 기업이 Scope 3를 공시하지 않을 경우 ‘극도로 친환경적인 기업’처럼 보이는 반면, 제조설비를 보유한 기업은 상대적으로 큰 비용과 규제를 감수해야 한다는 점에서 금융배출량은 특히 중요한 이슈로 부각되고 있다.
국내 상황과 관련해 그는 우리나라 기업들이 이미 배출권거래제와 목표관리제를 통해 일정 규모 이상의 온실가스를 측정·보고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다만 그동안 사용해 온 제도상의 조직·운영 경계 설정 방식은 국제 GHG 프로토콜과 차이가 있어, 향후 공시 체계 전환 과정에서 경계 재정의와 데이터 재구축이 불가피하다고 전망했다. 리스 차량이나 임차 사무실에서 발생하는 배출을 누구의 Scope 1·2로 볼 것인지가 대표적인 쟁점이다.
허 파트너는 온실가스 배출량 산정 방식도 간단히 소개했다. 고정연소를 예로 들어 “배출량 = 활동자료 × 발열계수 × 배출계수 × 산화계수”라는 공식을 설명하며, 기업이 직접 측정해야 하는 것은 연료 사용량(활동자료)이며 나머지 계수는 연료 특성에 따라 정해진 값을 적용한다고 말했다. 굴뚝에 계측기를 다는 방식이 아니라 연료 구매 기록과 재고 변화를 통해 사용량을 산출하는 만큼, 이러한 기초 데이터의 신뢰성이 확보되어야 이후 모든 공시와 시나리오 분석도 의미를 갖는다고 강조했다.
강연의 마지막에서 허 파트너는 기업과 회계법인이 직면한 실무 과제를 네 가지로 정리했다. 첫째, 연결재무제표 범위에 속하는 국내외 모든 법인과 공장에 대해 온실가스와 기후 리스크 데이터를 수집·관리할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할 것. 둘째, 기후 리스크를 반영한 미래 추정 손익·재무상태·현금흐름과 시나리오 분석 체계를 마련할 것. 셋째, 이러한 정보를 생성·검토·공시하는 전 과정에 내부회계관리제도 수준의 통제 절차를 도입해 규제기관과 시장으로부터 신뢰를 확보할 것. 넷째, 회계법인이 재무제표 감사와 유사한 수준의 지속가능성 공시 인증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준비를 갖추는 것이다.
허 파트너는 “지속가능성 공시는 아직 누구도 완전히 가보지 않은 길”이라며 “기업, 규제기관, 회계법인이 함께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표준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라고 강연을 마무리했다. 이번 특강은 ESG 공시를 단순한 유행어가 아닌, 자본시장과 기업 전략을 재구성하는 새로운 회계·재무의 언어로 바라보게 하는 계기가 되었으며, 회계와 데이터, 기후 이슈의 교차점에 서 있는 학생들에게 앞으로 요구될 역량과 진로 가능성을 구체적으로 그려보게 한 시간이었다.
취재: 정수아 / 기사: 정수아